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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 독립운동가 김규식
제작자 admin 사진수 8
조회수 749 추천수 0 제작일 2010-01-27
광복후 미군정의 주된 관심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임시정부 수립과 신탁통치'안을 맡길 지도자 선정이었다. 김구는 고집스럽게 반탁을 주장해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됐고, 이승만 역시 반공 · 반소의 극우파로 비춰져 배제됐다.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인물이 우사 김규식이었다.좌우합작운동을 펼치고 있던 우사의 노선이 미국의 의도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1881년 1월 27일에 태어난 우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10여 년간을 후진양성에 힘썼으나 나라의 명운이 다하자 중국으로 망명,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하고, 이승만과 함께 미국 조야를 상대로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22년간 중국에 머물며 임정 부주석으로 활동했다. 광복 후 귀국한 우사도 초기에는 반탁 대열에 동참했지만, 남북분단을 우려해 임시정부 수립 우선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이를위한 좌우합작이 그가 풀어야 할 선결과제였다.

1947년 4월 7일, 미군정이 대통령직 수락을 요청했지만 뜻밖의 차질을 빚으면서 이승만의 남한단독정부수립 노선이 힘을 받자 우사는 북행까지 감행하며 좌우합작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도 실패하는 바람에 낙담해 있던 중 6.25를 맞아 납북됐다. 그는 1950년 12월 평남 만포에서 69세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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